"상식을 의심하고 프로세스에서 배운다" —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

르상티망과 앙가주망부터 안티프래질, 에포케까지: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만의 주도권을 쥐는 50가지 생각 도구

책영화수첩·책··5분 · 조회 2

학창 시절 우리가 접했던 철학은 대부분 시험을 위해 철학자의 이름과 주장을 짝지어 외우는 박제된 지식이었습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고, 칸트는 정언명령을 주장했다는 식의 지식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휘발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비즈니스 전략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그의 대표작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철학은 교양을 과시하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불확실한 현실을 돌파하고 나만의 주도권을 지켜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가 정의한 철학의 진짜 목적이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 바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인류의 모든 분야에서 발견과 통찰을 원용하며 세계의 온갖 현상을 자유자재로 꿰뚫어 보는 힘.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공책에 빼곡히 기록했던, 제 삶과 연구, 그리고 매일의 선택에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준 철학적 통찰들을 정리해 봅니다.


1️⃣ 아웃풋보다 프로세스: "대지를 물이 지지한다면, 그 물은 무엇이 지지하는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대지는 물이 떠받치고 있다'는 상식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지를 물이 지지하고 있다면, 그 물은 도대체 무엇이 지지하고 있는가?"*

많은 현대인들은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고 주장했다'는 최종 결론(아웃풋)만을 암기하고는 "그건 요즘 초등학생도 다 아는 당연한 이야기잖아. 이런 뻔한 결론을 배우는 데 왜 시간을 써야 하지?"라며 쉽게 지나쳐 버립니다.

하지만 저자는 일침을 놓습니다. 아웃풋(결론)은 생선회 접시 위에 올려진 장식용 식재료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는 배울 만한 핵심이 없습니다. 진짜 배움의 알맹이는 상식에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사고의 끈기 있는 프로세스'에 있습니다.

아웃풋(Output)으로부터의 배움 ≪ 프로세스(Process)로부터의 배움

약학 연구실에서 실험 데이터를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만들어 둔 논문의 최종 결과값만을 베끼는 연구는 모방에 그칩니다. 왜 이전 가설이 흔들렸고, 어떤 질문을 통해 새로운 메커니즘을 규명해 냈는지 그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흡수할 때 비로소 나만의 독창적인 가설이 태어납니다.


2️⃣ 사람을 움직이고 나를 지키는 생각 도구

철학은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를 이해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경영하는 가장 정교한 심리학이기도 합니다.

  • 르상티망 (Ressentiment, 니체)
  • 기능 인식의 고착 (Functional Fixedness)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이 뒤섞인 시기심. 타인의 르상티망을 섬세하게 관찰할 때 인간의 숨은 욕망이 보이고, 그 결핍을 해소하는 지점에서 혁신적인 비즈니스 기회가 탄생합니다.

한번 물건이나 사람의 용도를 규정해 놓으면 좀처럼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지적 게으름입니다. 기존의 경계와 역할을 해체할 때 새로운 발견이 일어납니다.

  • 논리와 에토스·파토스 (Aristotle)
  • 앙가주망 (Engagement, 사르트르)

사람은 결코 차가운 논리(로고스)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성품과 신뢰(에토스), 상대방의 마음에 가닿는 진정성 어린 열정과 공감(파토스)이 결합될 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이 열립니다.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세상에 깊이 관여한다는 뜻입니다. 내 인생을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대한다면,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우연과 시련, 실패조차도 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의 일부로 품어 안을 수 있습니다.

  • 악의 평범성 (Hannah Arendt)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시스템의 명령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거대한 악의 하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는 용기'를 놓지 않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3️⃣ 조직과 사회의 파도를 넘어서는 법

변화가 극심한 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성과를 내는 조직의 원리 역시 철학 속에 숨어 있습니다.

  • 혁신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 타자와의 만남 (Emmanuel Levinas)

우리는 늘 "무엇을 새로 시작할까"만 고민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무엇을 끝내야 하는가"라는 뼈아픈 질문에 진지하게 맞서는 데서 출발합니다. 지난 시절에 대한 안락한 노스탤지어를 끝내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알지 못하는 낯선 것을 접해야만 미지의 세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사람과 영역을 거절하면, 알게 될 기회뿐 아니라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잃고 맙니다. 낯선 '타자'와의 마주침이야말로 나를 혁신하는 방아쇠입니다.

  • 안티프래질 (Antifragile, Nassim Nicholas Taleb)
  •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Deleuze & Guattari)

외부의 충격과 혼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쉽게 깨지는 유리잔(프래질)이 아니라, 충격을 딛고 오히려 더 강건해지고 역량을 키워내는 반취약성의 태도입니다.

하나의 좁은 고정관념에 갇혀 집착하는 편집증(파라노이아)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환경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자리를 옮기고, 때로는 재빨리 도망치며 궤도를 수정할 줄 아는 분열증적(스키조프레니아) 경쾌함이 최종적인 승리를 만듭니다.


4️⃣ 사고의 폭과 깊이를 넓히는 실전 프레임워크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명쾌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저자가 권하는 사고 도구들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Saussure)
  • 에포케 (Epoché, Husserl)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야 합니다. 언어의 해상도가 곧 사고의 해상도입니다. 미세한 개념의 차이를 규정할 수 있는 언어를 많이 가질수록,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현상의 틈새를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판단 보류. 때로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 애쓰기보다, 판단을 잠시 정지하고 선입견을 괄호 속에 넣어 둔 채 현상 그 자체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 훨씬 큰 통찰을 줍니다.

  •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Alan Kay)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려 점을 치는 대신,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오늘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Epilogue: 인생이라는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철학적 태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철학이란 현실과 동떨어진 고담준론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출근하고, 연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결정을 내리는 매 순간을 지탱해 주는 가장 단단한 뼈대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그냥 넘어가도 좋은 일상과 반드시 의심해야 하는 통념을 구분할 줄 아는 안목. 남들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앙가주망의 결단.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시련마저 내 인생이라는 예술 작품의 거름으로 삼는 안티프래질의 회복탄력성.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남들이 정해준 궤도를 벗어나 나만의 주도권을 쥐고 살아가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든든한 생각의 무기로 건넵니다.

  • #철학은어떻게삶의무기가되는가
  • #야마구치슈
  • #철학
  • #사고법
  • #안티프래질
  • #앙가주망
  • #독서노트
  • #책리뷰
  • #자기계발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 0

이름과 댓글만 남습니다. 이메일은 받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약사가 원리로 답하는 약과 화학 이야기, 한 주의 글을 모아 매주 한 번 보냅니다.

매주 한 번 발송 · 스팸 없음 · 언제든 한 번의 클릭으로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