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붕약사
읽고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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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위기철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아홉 살의 산동네에서 들었다

똑붕약사

약사 · 약제학(나노 DDS) 박사과정 연구원

3분 읽기 · 조회 0

지하철에서 읽을 소설이 필요해서, 오래 쌓아 둔 책 가운데 어릴 적 읽은 것 같은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을 다시 펼쳤습니다. 어린이 프로그램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였습니다. 겉표지는 관리를 소홀히 해 지저분하지만, 겉을 벗기면 노란 네모가 예쁜 책입니다. 저는 겉표를 벗기고 읽는 편입니다. 지금은 꼭 읽어야 할 목록이라고 무조건 집어 들지는 않는데, 어릴 때는 권장도서면 읽어야 똑똑해지는 줄 알고 읽었습니다.

짧게 나뉜 차례라 읽는 속도가 느린 저도 지하철에서 금방 읽었습니다. 아홉 살 여민이가 산동네로 이사하고, 친구를 사귀고, 숲에서 놀고, 골방 철학자를 만나 편지 심부름을 하고, 우림이라는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배웁니다.

1. 신기종

산동네 친구 기종이는 누나와 둘이 삽니다. 베트콩이라는 단어를 외치고, 군대식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비밀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할 수 없다면서, 여민이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간지럼은 고문이니 그러면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입이 근질거려 간지럼을 피워 달라는 협박입니다. 순수하고 귀여웠습니다. 비밀이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요. 그 비밀은 귀여운 비밀이라, 여기에는 적지 않겠습니다. 책을 읽을 사람을 위해 남겨 둡니다.

2. 아버지

여민이 아버지는 원래 부산의 유명한 조폭 출신인데, 어머니를 만나 성실하게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의 삶의 지혜와 따뜻함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을 괴롭히는 집주인을 꼬리 내리게 한 아버지의 말이 기억납니다.

적을 쫓을 때는 활로를 주고 쫓으라.

3. 우림

같은 반 우림이를 통해 여민이는 사랑의 첫걸음을 배웁니다. 우림이는 새침하고 쌀쌀맞습니다. 피아노 선생님 누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이런 말을 듣습니다.

사랑을 하면 기대하는 것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운 것도 많아지고, 그래서 공연한 투정도 부리는 건데, 상대방은 결코 그걸 이해하려 들지 않아. 단지 못된 성깔을 가졌다고만 생각하는 거야.

여민이는 “너그러워져야 해요. 그래야 이해하게 돼요”라고 답합니다. 사랑에서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말이 공감되었습니다.

4. 이별이 슬픈 까닭

가족 없이 혼자 사는 토굴 할매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물을 길러 산을 오갈 때마다 그 물을 채워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할매가 죽고, 아버지는 홀로 앉아 웁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서였을 것입니다. 슬프게 중얼거린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잘해주든 못해 주든, 한 번 떠나 버린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슬픈 거야.

있을 때, 함께할 때 잘하고, 존재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5. 아홉 살

아홉 살에 일어난 일과, 그때 세상을 어떻게 봤는지를 기억하십니까. 저는 그 나이의 일과 느낌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쁘든 슬프든, 지금 보면 모두 소중한 추억입니다. 아홉 살이면 세상을 충분히 안다고 느낄 수 있는 나이라고 믿습니다. 삶, 인생, 사랑, 가족, 우정을 생각하는 사건이 있었고, 기쁨과 슬픔, 낭만, 고통, 욕망, 좌절, 사랑을 느낄 일이 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2005년에 제가 읽어 둔 기록이 있습니다. 어릴 적 글씨입니다. 이사할 때마다 20년 넘게 따라다닌 책인데, 제대로 읽은 기억은 없었습니다. 너무 어려서 글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지금처럼 생각하며 읽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24년 6월 24일에 다시 읽었습니다. 초판은 1991년 12월 20일, 제가 가진 책은 2002년 7월 4일 개정 11쇄, 청년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아홉 살의 여민이보다, 그 책을 따라다닌 제 이십 년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아버지의 말은, 약이나 일보다 사람에게 먼저 적용하고 싶은 문장입니다.

  • #독서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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