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사토 겐타로
같은 책을 다시 읽으니, 약이 세계사를 밀어 온 자리가 보였다
똑붕약사
약사 · 약제학(나노 DDS) 박사과정 연구원
3분 읽기 · 조회 1
사토 겐타로의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2020년쯤 한 번 읽었다가 최근에 다시 펼쳤습니다. 그때도 술술 읽혔지만 기억에 남은 것은 적었고 감흥도 크지 않았습니다. 옮긴이 서수지의 문장이 재미있고, 작가도 재미있게 썼습니다. 약에 대한 공부가 쌓이고 나이와 생각이 달라진 뒤에 읽으니 같은 책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여러 번 읽어 보라는 말을, 상황과 생각이 바뀌면 같은 책도 다르게 깨달아진다는 경험으로 확인했습니다.
목차는 열하나입니다. 세계사를 바꾼 열 가지 약은 2번부터 11번이고, 1번은 약이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지입니다. 동물도 본능으로 쓰던 물질, 민간요법, 약이자 독이었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일본 약학대학 후나야마 신지 교수의 말을 인용합니다.
인류는 독과 약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와 점토, 종이 등의 기록 수단을 발명한 것처럼 보인다.
약효를 판정하는 방법이 어떻게 다듬어졌는지, 통계학이 어떻게 자랐는지, 약과 여러 학문과 사회가 유기적으로 얽혀 세계사를 만든다는 글이 서두에 있습니다. 열 가지는 이 순서입니다.
1. 비타민 C
대항해 시대에 가장 무서운 것은 폭풍이나 해적이 아니라 괴혈병이었습니다. 레몬즙으로 괴혈병을 다스리고 항해를 성공시킨 이야기입니다. 레몬즙을 준 선원과 주지 않은 선원을 비교한 것은, 실험군과 대조군이라는 실험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2. 퀴닌
말라리아 치료제입니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걱정이 적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말라리아로 죽습니다. 제약회사가 이윤이 남지 않아 개발이 활발하지 않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퀴닌은 훌륭한 약이지만, 생물은 약에 내성을 갖도록 진화합니다.
3. 모르핀
엔도르핀 수용체에 작용해 진통을 내는 물질입니다. 책은 여기서 아편 전쟁으로 넘어갑니다.
4. 마취제
와카야마현 기노카와 출신 하나오카 세이슈가 ‘쓰센산’이라는 마취제를 만들려 했습니다. 실험 대상이 필요해 어머니와 아내에게 시험했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아내는 실명했습니다. 약대 면접에서 교수님이 인류의 보건에 가장 크게 기여한 약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무 생각이 안 나다가, 예전 같으면 죽었을 사람을 살리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리다 대수술이 보였고, 그러려면 마취가 되어야 해서 마취제라고 답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약을 댈 수도 있지만, 이 장을 읽으니 그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5. 소독약
아이를 낳다 목숨을 잃는 산욕열, 수술하다 목숨을 잃는 수술열. 소독과 청결이 생존율을 크게 올렸습니다.
6. 살바르산
매독 치료제입니다. 다른 내용은 흐릿하지만, 치료제 개발의 문을 연 것이 관문을 통과한 일과 같았고 그 뒤로 약이 빠르게 개발되었다는 점이 남습니다.
일단 길이 열리면 진보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진다.
7. 설파제
세균만 죽이는 약을 고민하다 염색 공장 친구에게 털어놓았고, 세균만 염색되는 물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균만 물들일 수 있다면 세균만 죽일 수도 있다는 착안이 항생제 개발을 밀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바닥나면 다른 분야의 아이디어를 빌려 오면 어쩌다 잘 풀리는 경우가 있다.
8. 페니실린
알렉산더 플레밍과 날아든 푸른곰팡이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운으로만 보이기 쉬운데, 그 전에 플레밍은 콧물에 세균을 죽이는 것이 있다고 보고 콧물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물질이 리소자임이라는 것을 알고 항균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항균이 일어났을 때의 배양 상태를 봐 둔 경험이 있어서, 곰팡이에 오염된 플라스크를 보고 항균 물질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9. 아스피린
살리실산에 카르복실기를 더해 만든 약입니다. 살리실산을 먹던 아버지가 위장 장애가 심해, 그것을 덜고 효과를 높이려고 개발했다고 합니다.
10. 에이즈 치료제
구마모토 대학의 미쓰야 히로아키가 여러 치료제 개발에 관여합니다. 회사 외주 연구에서 효과를 밝히자 회사는 특허를 내고 비싼 값에 팝니다. 미쓰야는 보급을 위해 실험을 이어 가며 여러 치료제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약에 대한 눈이 달라진 상태에서 읽으니, 약이 세계사를 바꿀 만큼의 파장을 일으킨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실험과 끈기, 그리고 어떤 경험에서든 깨달음을 다음의 밑천으로 남기는 지혜가 남았습니다.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고, 경험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같은 글에서도 다른 것을 느낄 것입니다. 면접에서 마취제라고 답했던 그 순간의 이유를,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비로소 역사 안에 놓을 수 있었습니다.
-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