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는 사람-백희성
필기가 아니라, 내 질문으로 삶을 설계하는 기록
똑붕약사
약사 · 약제학(나노 DDS) 박사과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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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성의 『쓰는 사람』은 건축가인 저자가 남의 생각을 정리하는 필기가 아니라, 자신의 질문과 대화로 평범한 날을 비범하게 바꾼 기록입니다. 책 맨 앞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문장이 있습니다.
기록은 과거의 나를 만나고, 미래의 나를 설계하는 대화다.
이 문장에서 책의 방향이 정해진 느낌이었습니다. 기록은 메모가 아닙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 그 대화로 다음을 그리는 일입니다. 건축가가 도면을 그리듯, 삶도 기록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창의성은 저축할 수 있을까
저자는 디자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창의적인 재료를 미리 저축해 두었다가 꺼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창의성이 나온 순간을 거꾸로 추적하고, 그때의 노트를 다시 읽었습니다. 우리는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그는 영감이 생긴 순간을 분석했습니다. 기록은 창의성을 쌓아 두는 저장고였습니다.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흔적을 남겨 둔 사람에게 찾아오는 쪽에 가깝습니다.
논문 대신 소설을 쓴 이유
고택 이야기를 듣다가, 그것을 논문으로 쓰면 익명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설을 쓰게 된 대목도 오래 남습니다. 장르를 고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입니다. 기록은 정보를 옮기는 일이면서,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빗소리를 음악으로 바꾸면
저자는 안의 부정적인 생각을 다시 보는 법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그 생각이 안에서 씨앗처럼 자라게 두는 일입니다. 발코니의 빗소리가 싫었지만, 그 소리를 음악처럼 보고 나무 판자로 ‘빗소리 실로폰’을 만들어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석이 달라지면 의미도 달라집니다. 불편함이 아이디어가 되고, 싫은 것이 창작의 재료가 됩니다. 기록은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대화는 영감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때로 큰 영감을 줍니다. 한 사람의 삶이 담긴 진심의 대화는 나를 풍요롭게 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제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보였습니다. 에세이를 읽는 일은 작가와 대화하는 일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을 통과해 나온 생각과 감정을 듣는 일입니다. 기록은 혼잣말이 아니라 세상과 잇는 통로입니다.
대안 없는 비판
저자는 다른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것은, 논리가 있어도 탁상공론이라고 말합니다. 동의할 수 없다면 근거와 함께 대안을 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뜨끔했습니다. 대안을 고민하지 않은 채 판단만 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뭔가에 빠져 있다는 건 최소한 자기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열중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의미를 찾는 중입니다. 그 몰입의 시간이 삶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남과 다른 생각을 발효시키고 키우는 방법도 기록이었습니다. 기록은 내가 나에게 던지는 대화입니다. 생각은 바로 완성되지 않고 시간 속에서 익습니다.
나만의 길을 걸으며 배우고 느낀 모든 것들은 서로 완벽히 연결돼 나의 개성이 된다.
우리는 흩어진 조각처럼 삽니다. 기록은 그 조각을 잇고, 그 연결이 개성이 됩니다. 책을 덮고 다짐한 것은 더 자주 적자는 일이었습니다. 남의 말을 옮기는 기록이 아니라, 내 질문과 내 생각을 적는 기록입니다. 평범한 하루도, 적는 순간 설계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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